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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얕게 경험을 공유하는 일리의 프로젝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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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맛집을 깨닫는 순간 (미분당 합정점)
    넓고 얕은/쌀국수 일기 2021. 3. 15. 00:25

    나와 남자친구는 룸메이트 2년차다. 우리에게는 전통이 있는데 그것은 주말에 쌀국수를 먹는 것이다.

    이 전통이 어떻게 만들어 졌나하면 우선 나는 연애 전부터 맛있는 쌀국수 집을 만나면 메모장에 음식 사진과 그날 하루 일과를 기록해왔고 그만큼 좋아하는 음식이 무어냐 물어보면 쌀국수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남자친구는 쌀국수에 별다른 견해가 없었지만 나의 호들갑에 점점 물들어갔다. 근래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그가 쌀국수를 더 자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또 우리의 첫 거주지는 건대입구였는데 그곳에는 참 맛있는 쌀국수 가게가 많았다. 그냥 쌀국수 세권이 아닌 맛있는 쌀국수 세권에 거주하던 우리는 쌀국수 마니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주말이면 우리는 느즈막이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한 뒤 신이난 학생들이 즐비한 골목에서 추레한 차림새로 미분당 건대점에서 쌀국수를 포장해 들어왔다. 근무중에 받는 햇빛과 휴일에 받는 햇빛은 왜 그렇게 느낌이 다른 것일까? 햇빛은 깊이 들어와 있지만 시원한 에어컨 공기로 채워진 집에서 우린 나혼자 산다를 시청하며 쌀국수를 들이켰다. 이 기분좋은 주말을 영위했던 기억 덕분에 우리는 쌀국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건대입구역에서 살던 우리는 작년 가을 등촌동으로 이사를 왔다. 전보다 넓고 정돈된 환경에 행복하고 감사했지만 우리가 간과한것이 있었다. 바로 쌀국수.

    깨달음과 동시에 우린 가장 가깝다는 노란 간판의 쌀국수집을 찾아갔다. 아뿔사. 그제서야 우리는 이전 터전이 맛있는 쌀국수 세권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우리가 먹어왔던 쌀국수에 비해 기대에 못미치는 맛에 우리는 아무말 없이 꾸역 꾸역 들이킨뒤 가게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깨달음을 공유했다. (이 가게는 최근에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왔다. 다행이고 기대되는 식당이다.) 시행착오 끝에 노란 간판 쌀국수집을 지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보이는 나무로 만들어진 등촌동 최고의 쌀국수 가게를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잊을 수 없었던 맛중 하나는 바로 '미분당'의 맛이었다. 미분당은 다른 쌀국수 가게에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없는 그것만의 맛과 감성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우리중 특히 남자친구가 자주 입맛을 다시며 회상하곤했다. 나는 가까운 미분당이 어디에 있나 생각하다가 미분당 합정점을 떠올렸다. 그곳은 회사를 마치고 영상을 배우러 다니던 때에 지치고 추웠던 몸을 진한 국물과 푸짐한 양으로 위로해주었던 곳이었다. 왜 그곳을 이제야 떠올렸을까! 우리집과는 약 20분 정도 거리였다.

    그래서-오늘이 되었다.

    나는 일요일에 카페 알바를 하는데, 일을 마친뒤 남자친구와 합정 미분당에서 보기로했다. 우리는 점심 브레이크 타임 후 오후 5시의 첫손님으로 입장했고 차돌양지쌀국수와, 양지쌀국수, 추가로 고구마 짜조와 사이다를 주문했다. 미분당은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서 보았던 구조처럼 요리사를 둘러싸고 앉는 형태이지만 요리사의 얼굴은 가려져 있고. 옆사람에게 들릴정도로만 대화하도록 하는 규칙이 있다. 그 의도는 알길이 없지만 나는 쌀국수 맛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조리해주신 그대로의 국물을 들이키기도 하고 준비된 소스를 이렇게 저렇게 배합하여 먹다가도 역시 마무리는 요리 그대로의 쌀국수로 마무리한다. 식사 후반쯤엔 진한 국물 덕분에 짭쪼름하고 답답해진 입을 참고 참다가 사이다로 밀어낸다. 그 쾌감은 이루 말할수 없다. 남자친구는 마주봐주는 이 없이도 소리를 자제한 다양한 표정과 감탄을 하고 있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평소 식사를 할때는 상대방과 대화를 하거나, 무언가를 시청하는데 요리에만 집중하는 식사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또 이런 저런 공상에 빠지기도했다. 나중에 미분당과 같은 쌀국수가게를 열면 어떨까?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안되려나?

     

     

    차돌 양지 쌀국수
    속이 노란 고구마 짜조
    사. 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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